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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다한 이야기야

[골절 일기#6] 제5중족골(발등뼈) 골절 5주차 - 목발 짚고 비행기 타고 미친 출장길

수술 후 일주일에 한 번씩 정형외과에 방문하여

일주일 동안 더러워진 반깁스 붕대도 새 것으로 갈고

엑스레이를 찍고 잘 나아가고 있는지 확인을 한다.

 

오늘쯤이면 선생님이 목발을 그만 짚으라고 하시려나

반깁스를 졸업하자고 하시려나

기약 없는 기대를 걸어 보지만

그런 것은 얄짤없이 나의 희망일 뿐.

 

반깁스와 목발 생활은 골절 5주 차에도 계속되었으며

예전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뼈는 이제 안전하게 나사가 붙들고 있는 것 같으니

깁스한 발 뒷꿈치 정도는 목발 짚을 때 같이 살짝살짝 바닥에 딛어도 된다는 것뿐

 

이제는 슬슬 목발 짚고 걷는 것이 많이 수월해져서

솔직히 집안에서도 목발을 짚고 다니고 싶을 정돈데

집에 들어올 때마다 목발 바닥을 닦고 집에서 짚고 다니고 하는 것이

생각 외로 번잡스러워

집 안에서는 여전히 깽깽이뜀 내지는 기어 다니는 생활을 하고 있다.

 

예전에 읽었었던 골절선배분의 골절 일기에는

다리 골절환자의 집안 활보에 도움을 주는 획기적인 방법이 소개되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바퀴 달린 책상 의자를 이동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이었다!

아. 본래 획기적인 아이디어란 이렇게 하찮은 일상 주위의 대상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임!

바퀴 달린 의자를 타고 집안 곳곳을 쉽고 빠르게 이동하자는 이 아이디어는

너무나 참신하고 너무나 달콤하였으나

 

.... 우리 엄마아빠집에는 방문턱이 있었어....

태산과 같이 높아 보이는 방문턱이 그곳에 있었어.....

집에 바퀴 달린 의자도 있었지만 나에게 그 편리함은 닿을 수 없는 먼거리에 있는 것이었지...

그래서 나는 집안에서 어떻게 이동했느냐

화장실용 발판을 내 방 문 앞에 항상 대기시켜놓고

발판 위에 엎드려 발판을 마법의 양탄자처럼 타고 다녔음

무릎으로 기어 다니는 것보다 일단 무릎에 무리가 가지 않고

발판이 피부보다는 마찰력이 적어 슥슥 미끄러져 다니기가 쉬우므로.....

사람은 극한 상황에 다다르면 어떻게든 살아갈 방법을 찾게 되는 법

맥가이버 봐봐요. 항상 초 극한 상황에 닥치자나. 그러니까 꼭 살 방법을 찾자나.

 

방문턱, 참 너란 녀석.....

 

아빠와의 편도 70km 출퇴근 길은 계속 이어지고 있고

나는 골절 5주 차에 난데없이 비행기를 타고 울산 거래처에 미팅을 가게 된다.

저 번 포스팅에서 살짝 흘렸듯이

내가 모시는 사장님은 굉장한 쓰레기적 마인드를 품고 계신 분이셔서

굳이 내가 동행할 필요 없는, 심지어 비행기를 타야 하는 출장을 같이 가자고 하신다.

.... 순간 이 사람이 제정신일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음...

 

공항이 얼마나 널찍한 곳인지는 다들 잘 아실 듯

목발을 짚고 체크인을 하고 보안검색대를 통과하여 게이트 앞까지 이동한 후 비행기를 탄다.

만약 게이트랑 직빵으로 연결된 비행기가 아니면??

비행기 앞까지 이동 버스를 타고 비행기 앞에 내린 후 비행기에 연결된 트랩(계단이자나!!)에 올라야 함.

왕복이니까 이짓거리 X 2회

 

골절 5주 차인 나에게 도대체 왜 이래요.

차라리 나에게 권고사직을 하시지. 도대체 나에게 왜 이래요....

 

비행기를 타는 것이 아직 저에게 무리일 것 같다고 나는 최선을 다해 어필해 보았지만

나는 결국 김포공항엘 가게 되었고 비행기도 타게 되었지.

갈 때는 대한항공이었는데, 교통약자 서비스를 신청하니

체크인하는 곳에서부터 비행기 안의 내 좌석에 앉을 때까지

대한항공 직원분이 나를 휠체어에 태워서 끝까지 책임져 준다.

보안검색대도 목발 짚고 통과하지 않고

휠체어에 탄 상태로 옆의 별도의 공간에서 검색받을 수 있게 해 줌

비행기 자리도 추가금액 없이, 다리를 뻗을 공간이 넓은 비상구 좌석으로 배치해줌

(내 덕에 사장이란 사람도 비상구 자리에 앉아서 편하게 감)

 

나름 깁스를 한 사람도 편하게 비행기를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하며

대한항공의 서비스에 크게 감동함

(골절환자는 아주 작은 것에도 크게 감동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깁스하고도 출장가는 나. 나는 프로다(라고 읽고 노예라고 쓴다)

 

 

문제는 돌아올 때의 부산에어부터 시작이었음

부산에어의 교통약자 서비스는 추가로 3만 원의 금액을 내야 함

우리 사장님이 비싸다며, 우리 직원 지금 상태를 보라며 체크인 부스에서 진상을 부리기 시작함

여하튼 부산에어에서는 규정이 그렇다며 추가금 없이는 서비스가 안된다고 하니

그럼 휠체어라도 타게 달라고 함

내 휠체어를 사장님이 게이트까지 밀고 가야 함??

아.... 정말 죽기보다도 싫은 그 심정 앎???

차라리 막 나 스스로 기어서 게이트까지 가고 싶음?

그렇지만 방법 없잖아요. 사장님이 내가 탄 휠체어를 밀어요...

안 그래도 피폐해져 있던 나의 멘탈은 이미 알래스카쯤으로 떠나갔어요...

진심으로 거지 같은 마음으로 비행기 좌석에 착석

비행기가 안정 고도권에 진입하니 뉘 집 자식인지 모를 3세 추정 아동이

막 비행기 통로를 뛰어다니기 시작해요?

그 자식이 내 수술한 발을 밟았어요?

악-소리가 절로 나와요?

순간 겁나 서러워지며 내가 지금 왜 여기서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지 알다가도 모르겠어요.

비행기에 내려서는 휠체어고 나발이고

이성을 잃은 한 마리의 골절환자가 목발을 짚고 공항 밖까지 전속력으로 질주해요.

두 다리를 가진 사람도 나를 따라잡지 못해요.

굶주린 하이에나도 나를 따라잡지 못할 판이에요.

 

아 퇴사하고 싶다!!!

 

너무나 화가 나고, 슬프고, 좌절스럽고 누구라도 원망하고 싶은 나에게 남은 것은

팅팅 부은 다리뿐입니다.

 

깁스를 한 채로 의자에만 오래 앉아있어도

골절환자의 다리는 매일 엄청 부어요.

그래서 출근하고 회사에서 업무를 보는 것이 쉽지 않은 겁니다.

골절환자는 그래요. 깁스한 부위를 빼면 너무 멀쩡해 보이거든요.

그러니까 우리가 괜찮은 줄 아나 봐요.

하지만 우리도 몸이 불편한 환자라구요.

보이지 않는 깁스 안의 다리는 이렇게 붓는다구요.

알겠냐고요 이 사장 양반아!!

 

당신이 쉽게 생각한 출장은 내 발을 오징어 순대로 만들었어 이사람아

 

또다시 마음의 새로운 스크래치를 얻고 골절 5주 차를 보냅니다.

언제쯤 나는 내 두 다리로 걸을 수 있는 걸까요... (다음 이야기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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