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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다한 이야기야

[골절 일기#1] 제5중족골(발등뼈) 골절 - 발등뼈가 쪼개졌던 그 암울했던 이야기의 서막

골절 환자의 대부분이 그렇듯

골절 사고는 정말 하찮은 이유로, 생각지도 못한 사이, 갑작스럽게 나에게 닥치게 된다.

(비오는 날 쓰레빠 미끄러져서 골절 되는 경우 겁나 많이 봄ㅋㅋㅋㅋ)

다른 병처럼 전조 증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갑작스러운 사고로 골절이 발생하기 때문.

그래서인지 골절을 당한 후에는 더더욱 황망스러운 마음에

나에게 닥친 이 현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극도의 자괴감에 빠지게 되더라.

 

나도 골절 당시 슬픔, 두려움, 어이없음, 현실 부정, 짜증 등의 복잡한 여러 심정으로

멘탈이 나가버릴 것 같은 충격에 휩싸였었다.

그때 나에게 큰 힘과 위로가 되었던 것이 바로

나와 같은 부위를 골절당한 선배님(?)들의 수많은 골절 일기 포스팅들이었다.

부모님도 남자친구도 나를 위로해 주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유일하게 믿고 따를 수 있는 것은 나와 같은 길을 걸은 중족골 골절 환우들의 후기뿐...

아... 나만 이렇게 멘탈이 나간 것이 아니었구나

아... 이쯤은 되어야 절뚝거리며라도 걸을 수 있는 것이구나

아... 당분간 나도 운전하긴 글러 먹은 것이로구나

이런 현실적인 진행상황 및 멘탈 관리를 도와주었던 선배님들의 골절 일기!

그 시절 중족골과 관련된 골절일기를 모두 섭렵하고 정말 크나큰 힘을 얻은 나는

이제 그 고마웠던 마음을 담아 나의 골절 일기도 정리를 해볼까 한다.

내가 큰 위로를 받았던 것 처럼, 나의 기록이 다른 중족골 골절로 투병을 시작한 누군가에게 큰 힘이 되길 바라며.

"힘을 내요. 골절은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골절은 통증이 아닌 나의 멘탈과의 싸움입니다 여러분!"

 

 

나와 같은 쪽 다리에 깁스를 한 댕댕이 친구. 여보게 자네는 다리가 넷이라 목발이 필요없구먼?

 

"2020년 1월 17일 - 제5중족골이 골절되다"

 

하필이면 골절 전날밤, 나는 거주지에서 320km나 떨어진 출장지에서 직원들과 거나한 회식자리를 갖고 있었다.

회식 후 만취한 상태로 숙소로 겨우 기어들어와 처자던 중

새벽에 화장실이 가고 싶어 잠이 깼다.

화장실에 가려고 침대에서 내려오는 순간 나는 오른쪽 다리를 바닥에 잘못 딛게 된다.

평소 오른쪽 다리를 자주 접질려 발목 인대에 조금 문제가 있는 나는

순간 또 발목을 접질리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발목에 힘껏 힘을 주고 넘어지지 않기 위해 노력하던 중에

발목 대신 발등이 꺾이며 결국 침대 옆 바닥에 자빠지고 만다.

 

엄청난 고통에 발등을 부여잡고 엉엉 울었으나 (잠시. 약 45초 간?? ㅋㅋㅋ)

나는 아직 술에 취해있었으므로 다시 침대에 누워 그냥 잠을 자버리게 된다. 아.....

 

다음날 아침,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 다시 출장지에서 출근을 준비하던 나.

씻으러 화장실로 걸어가는데, 도저히 오른발이 아파서 걸을 수가 없다.

발목 인대가 늘어가서 아팠던 느낌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인대가 늘어나면 걸을 때마다 아프기는 하지만 결과적으로 참고 걸을 수는 있다.

그러나 이건 아예 걸을 수 조차 없는 아픔인 것이다.

직감적으로 무엇인가 잘못되었음을 느끼고

근처 정형외과에 방문하게 된다.

아프지 않은 왼발로 깽깽이를 뛰며 정형외과를 간다. 

진심으로 힘들다. 5미터도 한 번에 갈 수가 없다.

기어가면 더 빠를 것 같아. 아 진심으로 기어가고 싶다. 그런데 아침 9시라 주위에 바삐 출근하는 시민들이 너무 많아... 아... 나의 사회적 지위와 체면 불사하고 지금이라도 기어 가는게 맞는 거 아닌가...

1월 중순 한겨울인데 땀이 삐질삐질 난다. 깽깽이뜀 운동량 대박인가 봐. 

그렇게 나는 출장지의 한 허름한 시골 정형외과에서 인자하시고 연세가 많으신 할배 선생님을 만나게 된다.

 

증상을 얘기했더니 엑스레이를 찍고 오라신다.

엑스레이를 보시더니 쿨하게 말씀하신다.

발등뼈 골절이네요.

아. 순간 머리가 멍해지며 출장지 업무가 아직 한참 남았는데 나는 어쩌지 싶으며... 아아....

일부터 걱정해야 하는 이 직장의 노예 같으니라고.

오른쪽 5번째 중족골, 즉 새끼발가락쪽 발등뼈가 세로로 쫙- 쪼개져있다.

엑스레이를 보고 있자니 참.....

뭔가 비현실적인데, 참 길게도 쪼개졌네. 

남의 엑스레이를 보고 있는 것만 같다.

 

오른발 5번째 중족골에 세로로 금이 쫘-악, 악!!!!!!!

 

옆에서 봐도 이렇게 쫙- 하고 쪼개져 있는 나의 제5중족골같으니라고

 

황망함에 아무 말도 못 하고 있는 나를 간호사가 데리고 나간다.

침대에 눕히더니 반기브스 작업을 착착 진행한다.

나는 여전히 혼란스럽고 내 다리는 이미 반기브스에 붕대로 감겨있다.

간호사 언니가 목발을 들고 오더니 간단한 사용법을 막 알려준다.

이러지 마요 간호사 양반.... 난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됐어요.... 아아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아. 제발 가르침을 멈춰줘요...

 

어느새 나의 양쪽 겨드랑이 사이에는 목발이 하나씩 끼워지고

어린아이가 세상에 첫 발을 내딛듯, 나도 목발을 짚고 어색한 한 발을 이 세상에 내디뎌 본다.

아.... 병맛이야. 진짜 환자가 되었어. 아 비록 깽깽이긴 했어도 올때는 내 두 다리로 걸어들어왔는데에!!

그렇게 순식간에 나는 제5중족골 간부 골절 환자가 되었다.

 

목발은 사실 한쌍이 우리 집에도 있는데

예전에 발목이 한 번 크게 접질려서 병원에서 목발을 처방해 주었었음

그때 목발 9만 원인가 주고 비싸게 샀던 기억이 있는데 (이번엔 3~4만 원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함)

또다시 나에게는 새로운 목발 한쌍이 주어졌다....

엄마가 알면 나보고 목발 수집하냐고 욕하겠지.... 아아... 택배로 집에 있는 걸 보내달라고 할 수도 없고...

목발이라는 것이 참 그렇다.

한 번 쓰고 나서 나중에 혹시 몰라 집에 잘 모셔놓아 봤자 무용지물.

왜냐하면 항상 밖에서 다치고 병원에 가면 목발 없이 집에 갈 순 없으므로

병원에서 나에게 또 한쌍의 목발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아.. 엄마한테 욕먹어가며 그 목발 집에 괜히 보관해놨네.

엄마한테 집에 있는 목발은 이제 버리라고 얘기해야겠다.

목발은 알루미늄인가? 어디에 분리수거해야 하는 거지? 아... 엄마한테 또 욕 들어먹겠구나...

아.. 겨드랑이가 너무 아프구나 생각하며 황망한 마음을 안고 다시 숙소로 돌아간다.

 

 

일단 사장님과 회사 동료들에게 나의 골절 및 기브스 상황을 전달한다.

미안한 마음에 어쩔 줄을 모르겠고 너무나 괴롭다.

앞으로 출장지에서 내가 해결해놓아야 할 일들이 한두 개가 아닌데

나의 골절 사고로 내 몫까지 일해야 하는 동료에게 너무나 미안하다.

사장님한테도 괜히 면목이 없다. 아프지 않아야 하는 게 마치 직원의 의무인 것만 같은 기분이 들기 시작한다.

이렇게까지 내 잘못이라고 괴로워할 필요가 없는 것 같은데도 자꾸 내 탓을 하게 된다.

내가 전날 술이라도 덜 마셨으면

왜 새벽에 난데없이 화장실이 가고 싶었을까

발등뼈가 나의 몸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부러졌겠지

살은 왜 쪄가지고 이런 돼지 같은...

별의별 생각과 후회가 밀려든다.

 

불과 어제만 하더라도 내 두 다리로 잘 걷고 있었는데

지금 목발로 어기적 어기적 걷고 있는 이 현실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남자 친구와 엄마에게 전화로 이 상황을 보고한다.

다들 놀라고 어이없어하며 당황하다가 막 웃는다.

아.... 나도 이 상황이 어이없어서 웃음이 나와....

 

이제 출장지에서도 쓸모 없어진 나는 집으로 올라가야 하는데

나는 출장지에 내 차를 끌고 왔고 

나는 출장지에서 골절 사고로 오른 다리에 기브스를 한 거야....

왼다리를 다쳤으면 운전이라도 할 수 있었을 것을....

나는 어떻게 올라가나.... 내 차는 여기 버리고 가야하는 것인가....

미치고 환장하겠네. 

 

골절의 첫 번째 날이 이렇게 황망함 속에 지나가고 있었다..... (2부에 계속)